Tourmaline, Tsavorite, Rutilite, Diamond & 18k Gold
<대나무 숲의 비밀>
Written by Younghee Kim
소년이 살고있는 집 뒤편에는 병풍처럼 펼쳐진 대나무 숲이 있었어요. 엄마는 매일 여동생을 돌보느라 소년 혼자 외로웠지만, 그 숲에만 들어서면 신나고 재밌어서 외로움도 집도 까맣게 잊을 수 있었어요.
꼬부랑 뿌리들이 덩쿨처럼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미끄러운 댓잎에 신발이 훌러덩 벗겨질 수도 있어서 항상 살금살금 걸어야 했지만요.
우르르 쾅쾅 소나기가 온 후에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는 댓잎에 목을 축이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이파리 사이로 마주친 청개구리의 두 눈에 소년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어요. 그러다 그만 이제 막 솟아 나온 아기 새순을 밟고 말았지요.
"아야!"
새순은 땅에서 갓 솟아난 듯 키가 아주 작고 강보에 싸인 것처럼 겹겹의 껍질을 두르고 있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친 껍질 사이로 발갛게 충혈된 작고 보드라운 얼굴을 숨기고 있었지요.
"미안해. 괜찮아?"
새순은 한쪽 껍질이 소년의 발에 밟혀 아팠지만 부드럽게 말했어요.
"괜찮아. 그런데... 물이 마시고 싶어."
소년은 매일 손을 넣어 구름도 건지고 댓잎도 건지며 함께 놀던 작은 샘에게로 달려가, 두 손을 오므려 가득 샘물을 담아다 새순에게 부어 주었어요. 손 그릇이 작아 몇 번을 오갔지만, 새순이 어찌나 달게 마시던지 고된 것도 몰랐어요.
그렇게 소년과 새순은 친구가 되어 청개구리가 떼로 나타나 합창을 해도 놀라지 않고, 대나무 이파리에 고인 싱그런 물방울을 핥아먹으며 같이 놀았어요.
하루 종일 함께 있다 보면, 소나기에 맑게 씻겨진 햇빛이 산산이 유리가 되어 대나무를 가르는 광경도 보고, 들녘에 떨어지는 해거름 쉼터로 돌아오는 산비둘기의 소란한 날개짓에 대나무 숲이 진동하는 것도 느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둡고 소란한 긴 장마가 시작되었어요. 매일 양철 지붕을 밤새 볶아대는 비가 내리고 매서운 울음을 우는 바람이 몰아쳤어요.
작고 여린 새순이 걱정되어 밤새 꿈속에서도 대나무 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길 여러 날,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햇님이 나와 아침 일찍 소년은 대나무 숲으로 달려갔어요.
새순이 기다리고 있을 둘만의 장소로 달려가 쭉쭉 뻗은 대나무들 사이에서 작은 친구를 찾아봤지만, 새순은 보이지 않았어요.
새순을 불러보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여기야. 위를 봐. 나 여깄어."
소년은 목소리가 들리는 위쪽으로 고개를 들어 한참을 올려다 보았어요.
그곳에는 처음 보는 단단하고 멋지게 솟은 대나무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어요.
"나야, 죽순! 나 대나무가 되었어."
"정말? 네가 내 친구 새순이라고?"
"응. 자! 내게 매달려 봐. 내가 멀리까지 보게 해줄게."
"안돼, 부러져."
"그럴 일은 없어. 내가 얼마나 오래 땅 속에서 준비했는데! 단단해지려고, 꺾이지 않으려고!"
"정말 매달려도 부러지지 않아? 넌 작고 약했잖아."
"지금은 아주 단단해졌어. 칼로도 도끼로도 나를 벨 수 없을걸!"
소년은 믿어지지 않았지만, 대나무를 조심스럽게 붙잡고 두 발을 살짝 들어보았어요.
그랬더니 대나무가 힘찬 반동을 주어 소년을 들어 올리더니 이리저리 그네를 태워주었어요.
강인한 대나무의 매듭 저 깊은 곳에서는 그동안 묵묵히 맞곤 했던 비와 바람의 소리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되어 울려 퍼졌어요.
소년은 대나무에 매달린 채, 둘이서 함께 듣곤 했던 숲의 소리를 듣고, 둘이서 함께 마시곤 했던 생명의 숨을 깊이 들이 마셨어요.
대나무가 된 죽순이, 죽순이었던 대나무가, 자신에게 매달린 소년에게 속삭였어요.
"너도 곧 나처럼 될 거야. 느껴지니?"
빨갛게 상기된 소년의 볼을 식혀주던 바람도 소년에게 속삭였어요.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죽순과 소년에게 일어난 일을 구경하느라 제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내내 대나무 위에 앉아 있던 산비둘기도 죽순과 소년에게 속삭였어요.
"이제 몰라보게 되겠네."
죽순이 대나무가 된 비밀이 소년의 팔과 다리를 여물게 하고, 소년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사그라들게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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