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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비밀>


Written by Younghee Kim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천장에는 샤갈이 그린 그림이 꿈처럼 펼쳐져 있었어요. 그 천장화 속 세상에서는 천사가 뿔나팔을 불고 연인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새들이 꽃잎을 물어 나르고 무희들이 춤을 추었어요. 그 천장 그림 속 세상은 극장 밖 세상과는 또 다른 우주이자 천국이었어요.

 

가르니에 극장에 살던 'rêve(꿈)'과 'secret(비밀)'은 한 집에 살았지만 서로가 머무는 공간이 달랐어요. '꿈'은 천장화 가까이 눈부신 샹들리에 불빛 사이에 머물렀고 '비밀'은 천장화 멀리 어두운 극장 의자 밑에 머물렀어요.

 

'비밀'이 올려다 본 천장화 속 천국은 그 세상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선망과 소망 덕분에 나날이 더 빛을 더해가는 완벽한 세계였어요. 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받아서인지 샹들리에 사이에서 머물던 '꿈'은 별보다 더 반짝이는 존재가 되어갔어요.

 

'비밀'은 매일 관객들이 의자 밑에 흘리고 가는 짜디짠 눈물과 비밀스런 편지와 은밀한 귓속말들 때문에 점점 더 무거워지고 묘하게 굴절되어, 이중 삼중의 그림자들까지 갖게 됐어요.

'비밀'은 갈수록 빛을 잃는 대신 어둠의 신비를 얻게 되었죠.

 

더는 부러울 게 없던 찬란한 '꿈'은 어둡게 가라앉은 극장 바닥을 내려다볼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공연이 끝나고 샹들리에 불빛이 꺼지고 나면,

검푸른 바다가 일렁이듯 반딧불이가 한꺼번에 이동하듯 오로라가 밤하늘을 수놓듯

신비롭게 꿈틀거리는 극장 바닥이 '꿈'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어요.

 

특히 어느 날 밤,

한 여인이 극장 의자 밑에 떨구고 간 반지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섬세하고 애달픈

빛은 '꿈'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어요.

그 여인은 아름다운 레이스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분명 진주 같은 눈물을 떨구며 손가락에 소중히 끼고 있던 반지를 빼내고 있었어요.

마치 불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마치 불에 대인 것처럼 고통스럽게…

'꿈'의 눈에만 보이게 그렇게 반지를 손에서 놓아버렸어요.

 

"저 작은 반지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아름답고 영롱할까?

그 어떤 오페라와 발레보다 가슴을 꽉 움켜쥐는구나…."

 

 

'꿈'은 이제 매일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흘리고 가는 눈물과 비밀스런 편지와 은밀한 귓속말들로 신비롭게 꿈틀거리는 극장 바닥을 보기 위해 어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고, 아름다운 천사와 황홀한 음률을 지루해하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비밀’은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과 사람을 살리는 묘약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됐지만 어둠 속에서 점점 굴절되고 무거워져, 항상 가볍고 자유로운 천장화 속 세상을 동경했어요.

무겁디무거운 자신도 저 눈부신 빛 속을 먼지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며 천사와 희롱하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싶었어요.

 

"오직 신과 아름다움만 생각하면 되는 저곳은 어떤 곳일까? 저 그림 속 작은 새가 될 수만 있다면…“

 

그러던 어느 날 '비밀'과 '꿈'은 큰 결심을 했어요. '비밀'은 자신을 짓누르던 무게를 더는 참지 않고 중력을 무시하기로 했어요. '꿈'은 자신을 가볍게 하던 중력을 더는 참지 않고 무거운 자신의 무게를 인정하기로 했어요.

 

그러자 갑자기 극장 전기가 찌릿찌릿 요동치더니 온통 정전이 되어버렸어요. 천장화 속 세상도 무대 위도 극장 관객석도 모두 어둠에 잠겨버렸어요. 찰나와 같은 영원의 시간이, 영원과 같은 찰나의 순간이 흐른 뒤 다시 환하게 불이 켜졌어요.

 

그 정전의 순간 '비밀'은 천장화 속 푸른 하늘까지 단박에 날아오를 수 있었고, '꿈'은 극장 바닥 의자 밑까지 단박에 굴러 떨어질 수 있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비밀'은 천장화 속 작은 새가 되어 있었고, '꿈'은 관객석 의자 밑 어느 여인이 버리고 간 슬픈 사연의 반지가 되어 있었어요. '비밀'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자유로운 비밀이 되었고, ‘꿈'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꿈이 되었답니다.

 

"앙드레 말로 씨!

당신이 제게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을 장식해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저는 미칠 듯 가슴이 뛰었고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넋을 잃을 뻔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자문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가냘픈 작은 새 한 마리가 꽃다발을 물고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비밀과, 어둠 속에서 더욱 굳건해지는 꿈의 날개를 제 천장화에 표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꿈이 없는 비밀은 한없이 음습하고 비밀이 없는 꿈은 한없이 가볍기만 합니다.

인간은 꿈과 비밀의 양날개를 달고야 비로소 따스한 신의 품으로 날아가 안길 수 있습니다.

저를 믿어주신 당신과 제가 진정으로 사랑해마지 않는 이 파리에 부끄럽지 않은 선물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천장화의 제목은 ‘꿈의 꽃다발’이라고 짓겠습니다."



-rêve(프랑스어 꿈)

 

-secret(프랑스어 비밀)

 

-마르크 샤갈:러시아의 유대인 화가였던 그는 1910년 프랑스로 건너와 무수한 이미지와 영감들을 선물 받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꽃피우게 된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부탁을 받고 자신을 품어주고 예술의 꽃을 피우게 해준 파리에 대한 감사를 가득 담아 기꺼이 그려낸 걸작이 바로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인 '꿈의 꽃다발'이다.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마르크 샤갈의 천장화가 있으며 웅장한 계단과 아름다운 샹들리에를 품고 있어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가 된 극장이다.

 

-앙드레 말로: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소설가·정치가. 저서로 《정복자》 《인간의 조건》 등이 있다. 프랑스 드골 정권하에서 정보·문화 장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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