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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맞대듯 영혼을 마주대다>


Written by Younghee Kim


눈의 여왕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에서 가져온 듯한 눈 코 입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녀의 성에 어떤 새도 어떤 동물도 찾아들지 못할 만큼, 그녀는 차가운 여자였어요. 물론 사람들도 얼음의 성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죠. 어둡고 추운 밤에 마을로 내려와, 어린 소녀와 소년들의 심장에 얼음이 들게 하여 기억을 지우고 데려가버린다는 잔인한 소문들이 사람들을 더 두렵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실은 그녀는 사계절 내내 얼굴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어떻게 얼굴 근육과 신경을 움직여야 할지 방법을 알 수 없었던 것뿐이에요.

기쁠 때는 어떻게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빛내야 하는지,

슬플 때는 어떻게 볼을 씰룩이며 눈을 깜빡여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거든요.

 

눈의 여왕은 세상에 꼭 겨울이 필요해서,

사람들에게 긴 낮과 찬란한 태양이 필요하듯 긴 밤과 차가운 눈이 꼭 필요해서 세상에 존재했을 뿐인데,

표정이 없는 그녀를 사람들은 무조건 차갑고 무서운 존재라 생각하게 됐고, 그녀를 둘러싼 정적과 외로움은 성을 더욱 황량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그녀의 성에 유일하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얼음의 성을 깎고 다듬어 사계절 내내 아름답게 빛나도록 해주는 조각가였어요.

 

처음엔 두려워서 쳐다볼 수도 없었던 그녀를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엔 차디찬 손끝

그다음엔 경직된 목덜미

그다음엔 딱딱한 볼

그다음엔 마냥 굳게 다문 입술

그다음엔 보석처럼 똑바로 박힌 눈동자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조각상인가 싶어, 얼음을 다듬는 손을 멈추고 한참이나 몰래 쳐다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조각가는 눈의 여왕이 자신이 조각하는 모습을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쳐다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신이 다듬고 있는 얼음이 거울처럼 투명해졌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비쳐 보였거든요.

 

얼음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조각가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됐어요.

감정이 없고 무표정 하다고 느꼈던 그녀의 얼굴이 얼음에 비쳤을 땐 신기하게도 감정이 깃들어 보였거든요.

 

때로는 희미하게 입꼬리가 움직이는 듯 했고,

때로는 볼이 미세하게 떨리며 붉어지는 듯도 했고,

때로는 눈 위로 바람 같은 것이 일렁이는 듯도 했어요.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비비거나 깜빡인 뒤 얼음을 다시 들여다보면, 어느새 그녀의 표정은 이미 사라져버린 뒤였어요.

 

그러나 착각이나 환영인 줄 알았던 그녀의 표정이 그가 조각하고 있는 모습 위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그는 확신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며 슬퍼하기도 한다는 것을요.

 

그가 마을의 꽃과 아이들을 얼음 위에 조각하자 그녀의 볼이 움찔하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고, 그가 하늘 위의 별과 달을 얼음 위에 조각하자 그녀의 눈이 반짝 벌어지며 꿈꾸는 듯했어요.

 

얼음 위에 비추인 그녀의 달라진 표정들이 그의 마음을 신나게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커다란 애잔함이 가슴 속에 일렁임을 느꼈어요.

그녀의 표정이 살아나는 것은 아주 찰나일 뿐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거든요.

얼음 위에 비친 그녀의 달라진 표정들이 그의 마음을 신나게 했지만, 그녀의 표정이 살아나는 것은 찰나일 뿐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갔기에 커다란 애잔함이 일렁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눈의 여왕이 조각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을 때, 얼음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조각가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어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의 눈에서 일어나던 혐오와 두려움을 익히 알고 있던 그녀의 눈에 조각가의 눈빛은 낯선 것이었어요.

그 눈빛은 시작과 끝이 따로 없었고, 목적과 조건이 없었으며, 의문이나 걱정도 없이 그저 따스하기만 해서 눈의 여왕은 크게 혼란스러웠어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조각가는 그녀의 정면에 서서 두려움 없이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어요.

그가 미세하게 웃자 그녀도 미세하게 웃었어요.

그의 볼이 조금 붉어지며 춤을 추자 그녀의 볼도 조금 붉어지며 춤을 추었어요.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벌어지며 바르르 떨리자 그녀의 입술도 조심스럽게 벌어지며 바르르 떨렸어요.

 

조각가가 그동안 얼음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을 발견했던 것은 실은 얼음에 비친 조각가의 표정을 그녀도 모르게 따라한 것이었음을,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어요.

아기가 엄마의 얼굴 표정을 그대로 따라하듯 그렇게 말예요.

 

얼음에 반사된 모습이 아니라 이렇게 똑바로 서로를 마주하고 나니, 왜 유독 얼음에 비친 모습에만 그녀의 표정이 깃들었는지, 그에 대한 비밀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조각가는 자신의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그는 자신의 왼쪽 뺨을 조심스럽게 겨울여왕의 왼쪽 뺨에 갖다 댔어요. 그녀의 뺨이 너무 차가워서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동안 얼음 속에 비친 그녀의 사랑스런 표정들이 찰나에 머물다 사라져버리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자신의 심장 깊은 곳의 고통이 사그라질 수만 있다면,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차가움도 온몸을 녹여버릴 듯한 뜨거움도 모두 별것이 아니었어요.

 

그의 왼쪽 뺨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차디찬 왼쪽 뺨으로 흘러들어 갔어요. 그녀의 영혼에 깊이 뿌리내려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차가운 냉기가 마치 용암이 들이부어진 듯 녹아내리기 시작했어요.

 

오랜 시간 굳게 얼어붙어 있던 신경과 근육들 사이사이로 그의 용암 같은 열기가 피처럼 맹렬히 돌아다니며 그녀의 얼굴을 해방시켰어요.

오랜 세월 굳게 잠겨 있던 감정의 호수와 골짜기 사이사이로도 그의 태양 같은 온기가 파도처럼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그녀의 영혼을 자유롭게 했어요.

기쁠 때는 맘껏 웃고 슬플 때는 맘껏 울 수 있는 아이와 같은 아름다운 얼굴을, 눈의 여왕은 비로소 갖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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