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maline, Ammolite, Roman glass & 18K Gold

<행복한 왕자의 심장>


Written by Younghee Kim


왕자님은 어릴 때부터 눈물이 아주 많았어요. 조금만 슬픈 이야기를 듣거나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하면 심장이 찌릿찌릿 아프고 눈물이 흘렀답니다. 

 

아버지인 왕은 왕이 될 왕자가 유약한 것이 못마땅하고 걱정스러웠지만

왕자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런 왕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돌봐줬던 유모에게도

공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에게도

하루 종일 보좌해주는 시종들에게도

왕자는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왕자는 선생님과 시종들을 대동하고

도시의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다양한 상인들의 일상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시민들은 자주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며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었던 왕자를 존경과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어요.

자신의 왕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들에게서 사랑의 마음을 돌려받는 왕자의 모습을 보고서, 시종들은 왕자를 '행복한 왕자'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한 보석 세공사의 상점 앞을 지날 때 왕자는 가슴 아픈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어요.

세공사의 아들인 작은 소년이 서글피 울고 있고, 아버지인 보석세공사는 빚쟁이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답니다.

 

왕자는 얼른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왕자의 상징인 귀한 반지를 빼서 보석세공사에게 주며 이 반지로 모든 빚을 청산하라고 말했어요. 세공사와 작은 소년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상황에 그저 왕자의 손을 잡고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러고는 왕자가 상점을 떠나 궁전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작은 점이 되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소년은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안타깝게도 행복한 왕자는 왕이 되기 전에 심장에 병이 생겨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왕과 궁전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사랑하던 왕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오랫동안 애도의 시간을 보냈답니다.

 

대신들은 국민들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과 금으로 만들어 도시 한가운데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는 왕국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보석 세공사를 뽑아,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이제껏 본 적 없는 훌륭한 동상으로 제작해달라고 의뢰했지요.

 

왕국의 보석세공사 중 그 누구보다도 솜씨가 뛰어났고 또 그 누구보다도 왕자님을 사랑했던 세공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왕자로부터 귀한 반지를 받아 모든 빚을 갚고 가족의 삶을 지킬 수 있었던 보석세공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지켜가던 그에게 한시도 잊지 않았던 왕자님의 죽음은 청천벽력과 같았지만, 왕자님의 동상을 의뢰받자 그는 왕자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보답이 무엇일지 깊이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세공사는 오랫동안 낮밤을 잠도 자지 않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종이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끄적이며 설계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보석 한 알 한 알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찾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대신들은 그의 고민이 깊어지자 얼마나 더 아름다운 보석을 가져다가 얼마나 더 훌륭한 동상을 만들려고 저럴까...라고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공사의 목적은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왕자님의 눈에 들어갈 사파이어와 칼자루에 들어갈 루비를 도둑들이 훔쳐가거나, 전쟁이라도 나서 약탈자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세공하려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세상에 다시 없을 세공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왕자님의 동상에 박힌 보석을 빼내려면 동상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보석을 밀어내면서 동시에 밖에서 보석을 빼내려는 힘을 함께 가해야 빠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

 

세공사의 고민이 끝나자 행복한 왕자의 동상은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사파이어와 루비와 황금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세공사는 아무에게도 작업을 맡기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 낮과 밤을 조각과 세공에 매달렸습니다.

 

드디어 동상이 완성되고 광장 한가운데 높은 기둥 위에 왕자의 동상이 안착되었습니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몰려와 왕자의 눈에서 빛나는 사파이어와 칼집에서 빛을 뿜어내는 루비를 보고 탄성을 올렸고, 왕자의 온몸에 얇게 덮인 황금의 화려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몇몇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지요.

"분명히 가장 중요한 왕자님의 심장은 저 루비나 사파이어보다도 더 귀한 보석으로 만들었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뒀으니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울까!"

간혹 세공사에게 직접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공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몇몇 까다롭고 깐깐한 대신들은 세공사에게 동상의 심장을 제작할 때 자신들의 입회하에 진행하라고 요구했지만, 세공사는 제작 기한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회피하다가 그들에게 왕자님의 심장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동상을 완성해버렸습니다.

완성된 동상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어느 누구도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왕자의 동상은 광장의 높은 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왕자님의 동상에 눈인사를 보내던 세공사는 몇 년이 지난 어느 겨울날, 동상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첫날은 왕자님 한쪽 눈의 사파이어가

둘째 날은 반대편 눈의 사파이어가

셋째 날은 왕자님 칼자루의 루비가

차례로 사라져갔던 것입니다.

더는 보석이 남아 있지 않자, 그다음 날부터는 왕자님의 몸을 덮고 있던 금조각들이 한 조각씩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구도 왕자님의 동상에 있는 귀한 보석들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비밀리에 세공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기에, 세공사는 눈을 의심하며 충격에 휩싸였어요.

그러던 사이 행복한 왕자의 눈은 사파이어가 사라져 텅 빈 채 어둠만을 보고 있었고, 몸은 금빛이 사라져 잿빛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의 흉물이 되어버린 왕자의 동상을 발견한 대신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도시 경관을 해친다며 철거를 명령했습니다.

 

동상이 철거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왕자님의 동상을 보러 가던 세공사의 눈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골목마다 나와 즐겁게 웃으며 뛰어 놀고 있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집집마다 따스한 벽난로가 켜져 있고 아이들의 볼은 장밋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장밋빛 얼굴을 바라보던 세공사는, 왕자님의 아름다운 황금색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버린 것과 아이들의 볼이 장밋빛으로 피어난 것이 무언가 상관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동상 앞에 도착한 세공사의 눈에, 남쪽으로 가지 못하고 왕자님의 발밑에 얼어 죽어 있는 작은 제비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제비는 아무데서나 얼어 죽은 것이 아니라, 마치 왕자님의 발에 입맞춤을 하듯, 마치 왕자님의 발치가 유일무이한 자신의 둥지인 듯 단정히 누워 있었습니다.

마치 왕자님과 모든 것을 함께하려는 듯 단정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 순간 세공사는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진실로 퍼즐이 맞춰짐을 느꼈습니다.

 

왕자님은 죽어서도 자신의 왕국의 가엾은 이들을 돌보고 싶어 하셨을 테고, 광장 높은 곳에서 불쌍한 사람을 발견할 때마다 남쪽으로 채 떠나지 못한 제비에게 사정을 해서 보석을 하나씩 빼내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자님은 안쪽에서 보석을 밀고 제비는 바깥쪽에서 보석을 당겨 동시에 힘을 모아 보석을 빼냈기에, 보석세공사의 비밀스러운 세공에도 불구하고 보석이 빠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왕자님의 칼집에서 루비를 뽑고, 왕자님의 한쪽 눈의 사파이어를 물어다 주고,

마지막 한쪽 눈의 사파이어까지 빼낼 때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 왕자님이 너무 안타까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제비의 마음이 느껴져, 세공사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도시를 내려다보며 왕자님의 눈이 되어드리고자 친구들이 있는 남쪽나라로 가지 못하고, 결국 왕자님 발치에서 얼어 죽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끝내 행복한 왕자님의 동상은 철거되어 커다란 용광로 안으로 던져졌습니다. 쓸모없는 제비도 함께 용광로에 던져졌지요. 거대한 동상이 다 녹을 때까지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세공사는 왕자의 마지막 흔적을 눈으로라도 어루만지러 용광로를 찾았습니다.

자신이 정성스럽게 조각했던 왕자님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녹아버렀고 제비의 모습도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쓰디 쓴 눈물을 훔치던 세공사의 눈에 잿더미 속에서 언뜻 무지개 같은 것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습니다. 얼른 달려가 잿더미를 해집어 무지갯빛의 정체를 뒤져보니, 놀랍게도 오색찬란한 보석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이 보석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레드와 그린 그리고 브라운과 블루가 오묘하게 서로의 몸을 부딪히며 뿜어내는 오로라라니. 세상 온갖 보석들을 들여다보고 만졌던 세공사조차 생전 처음 보는 진귀한 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모양과 크기가 자신이 왕자의 동상에 심장으로 만들어 넣었던 암모나이트와 흡사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실은 보석 세공사만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 있었습니다.

행복한 왕자의 동상 속에 들어간 심장의 정체는 사파이어나 루비보다 진귀한 어떤 보석이 아니라 '암모나이트'라는 화석이었답니다.

혹시라도 왕자의 동상이 파손되거나 잘못된다 해도 심장을 도둑맞지 않도록, 보석 세공사는 왕자님의 동상을 조각하고 보석을 장식할 때 왕자님의 심장만은 가치가 없는 무채색 암모나이트를 만들어 넣었던 거예요. 상상도 못할 진귀한 보석으로 만들었을 거라는 대신들과 국민들의 상상과는 정반대의 심장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암모나이트'가 용광로 속에서 고열이 가해지면서 기적이 일어났던 겁니다.

왕자님의 희생과 제비의 사랑과 보석 세공사의 소망이 하나로 뒤엉키면서, 오랜 세월과 거대한 압력과 높은 열이 만나야만 생성된다는 '암몰라이트'가 탄생된 것이지요.

 

세공사는 이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적 앞에 때마침 눈이 내리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자님과 제비의 영혼을 하느님께서 받아주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고, 자신 또한 이 황홀한 암몰라이트 심장이 뿜어내는 오로라 속에서 천국을 엿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신비스러운 보석의 틈새로 세공사가 엿본 천국에는 천사가 된 행복한 왕자님이 있었고, 왕자님의 어깨 위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지저귀고 있는 아무 걱정 없는 제비가 있었답니다.

 

-암모나이트(ammonite):고생대에 나타나 중생대에 멸종했던 심해생물인 암모나이트의 화석.

 

-암몰라이트(ammolite): 화석인 암모나이트에 오랜 시간 동안 고열과 높은 압력이 가해지면 아주 드물게 오팔화 현상이 일어나 신비스럽고 찬란한 무지갯빛을 띄는 보석이 된다. 이렇게 기적처럼 오팔화 된 암모나이트를 암몰라이트라고 한다. 앞으로 20년 후면 매장량이 다하여 더는 볼 수 없게 될 귀한 보석이다.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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